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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대도시의 사랑법>, 도시 속 13년 우정이 말해주는 관계의 본질

by loveyou-s2 2025. 6. 10.

 

 도시 속 사람들은 외롭다. 바쁘게 흘러가는 삶 속에서 사랑과 우정사이, 진심과 침묵 사이에서 살아간다. 이처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선명한 이름을 갖기 어렵다. 때론 친구 같고, 때론 연인 같으며,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존재하기도 한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그 애매하고도 애틋한 관계의 경계선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박상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김고은과 노상현이 13년 지기 ‘재희’와 ‘흥수’로 나오는데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감정선을 이 영화에서 차분하게 그려낸다. 단순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라 이 도시에 살아가는 모두에게 관계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게하며, '잘 살고 있는건가?' 라는 물음이 들 때 방향을 잡아주는 영화라 생각한다.

 

1. 관계의 정의를 거부하는 서사

 대도시의 사랑법은 관계를 사랑과 우정 딱 두가지로만 정리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름 붙일 수 없는 모호한 관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재희와 흥수는 13년 동안 함께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자신들의 관계를 규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연인이 아니지만 누군가가 다치면 가장 먼저 달려가고, 상처받으면 특별한 위로없이도 함께 취하는 날을 보낸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연애보다 깊고, 갈등은 가족처럼 날카롭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둘의 관계를 우정과 사랑이라는 두가지로만 정의하지않고, 차가운 도시 속에서 의지할 수 있는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로 그려진다. 

 이러한 관계는 현대 도시에서 흔히 발견된다. 긴 시간 동안 가까이 있어도, ‘우리는 어떤 사이야?’ 라는 질문을 꺼내는 순간 관계는 흔들린다. 영화는 이 불안정한 구도를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관계가 애매하기 때문에 더 진실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관객은 두 인물의 사이를 규정하려 애쓰기보다는, 그들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공기를 느끼게 된다. 영화가 말하려는 건 ‘정의가 없는 관계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김고은과 노상현, 감정을 연기하는 것이 아닌 살아내다

 재희는 극 중에서 사회가 만든 틀을 깨는 독특한 인물로 그려진다. 성공하거나 안정되지 않았고, 감정 표현도 투박하며, 때로는 자기중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재희에게는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깊이 이해하려는 애정이 있다. 사실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애쓰기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김고은은 이 복합적인 인물을 놀라운 집중력으로 표현한다. 눈물 없이 슬픔을, 웃음 없이 기쁨을 전할 수 있는 연기력은 이 영화의 정서를 깊게 만든다.

 노상현이 연기한 흥수는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늘 재희의 곁에 있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멈칫하거나 돌아선다. 관객은 흥수의 침묵 속에서 그의 선택과 상처를 읽게 된다. 침묵이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은 이 영화가 감정을 다루는 매우 세련된 방식이기도 하다. 두 배우의 호흡은 대사 없이도 시선의 방향, 몸을 트는 순간, 술잔을 들이키는 방식으로 그들의 대화를 이어간다.

 

3. 도시의 익명성과 인간관계의 이중성

 서울이라는 도시는 이 영화의 배경이자 또 다른 인물이다. 수많은 사람 속에서 오히려 고립감을 느끼게 하고, 거대한 풍경 속에서 개인의 내면을 더욱 또렷하게 부각시킨다. 이 도시는 재희와 흥수를 만나게도 하지만, 동시에 멀어지게도 만든다. 도시의 이중성이 인물 간의 관계와 평행을 이루며, 주위에 사람은 많지만 정작 내 사람은 없는 것 같이 느껴지는 외로움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도시라는 곳은 감정을 표현하기엔 너무 바쁘고, 관계를 유지하기엔 너무 복잡한 공간이다. 영화는 그 속에서도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인물들을 보여주며, 그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재희는 현실 속에서 망가지고 좌절하면서도, 흥수에게는 끝까지 진심을 놓지 않는다. 흥수는 재희가 선을 넘을 때마다 선을 그으면서도, 결국 그 선 안에 그녀를 계속 들인다. 이러한 반복은 우리 모두가 겪는 관계의 패턴과 다르지 않다.

 대도시의 사랑법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가 아니라,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이다. 영화는 정답을 주지 않고, 질문을 남긴다. 정답은 없다. 하지만 그 질문으로 하여금 내 인생의 방향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한다.

 

4. 결론: 관계를 껴안는 방식에 대하여

 대도시의 사랑법의 배경은 화려하지만 이 영화 자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않다. 흔히 그려지는 극적인 전개나 클라이맥스도 없다. 하지만 그 조용함 속에서 가장 강렬한 감정이 흘러나온다. 이것은 관객에게 정제된 감정이 아니라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건넨다. 김고은은 이 감정을 결코 과장하지 않고, 오히려 그 어딘가 정말 존재하고 있을 현실적인 인물을 그린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을 머무는 감정이 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건, 때로는 전부 이해하지 못한 채 곁에 머무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그러한 감정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영화라는 언어로 풀어낸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당신의 곁에 있는 누군가를 다시 바라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감정이 꼭 이름 붙여져야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도, 조금은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이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데에 사람들이 정하는 틀에 갇힐 필요는 없다. 정답은 없다. 특별한 노력없이도 나를 나 그대로 존재하게하는 관계라면 그걸로 된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