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신작 드라마 <소년의 시간>(The Long Shadow of Youth)은 보기 전과 본 후의 생각이 완전히 달라지는 작품이다. 처음엔 단순한 청소년 범죄물쯤으로 여길 수 있지만, 막상 보게 되면 ‘범죄’보다는 ‘관계’, 특히 부모와 자식 사이의 균열에 대한 작품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이 드라마는 한 소년이 살인 혐의로 체포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그리고 그 주변에서 이를 바라보는 사회와 제도의 시선까지 깊숙하게 파고든다. 특히 시리즈 전체를 롱테이크 형식으로 구성한 독특한 연출은 시청자에게 마치 하나의 현실을 몰래 들여다보는 듯한 감각을 준다.
범죄보다 더 무거운 건 그 범죄가 만들어진 과정이라는 걸, 이 시리즈는 차분하지만 집요하게 말하고 있다.
1. “소년”보다 “아버지”의 이야기 – 그는 보호자인가, 방관자인가?
이 시리즈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범죄의 당사자인 소년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인 에디다. 드라마는 철저히 에디의 시점에서 사건을 바라본다. 에디는 무능한 아버지도, 악한 부모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아버지일 뿐인데, 아이의 잘못 앞에서 점점 무너진다. 그는 "나는 정말 괜찮은 아버지였나?"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이 드라마가 특별한 건 바로 그 지점이다. 단지 '아이들이 무서운 세상'이 아니라, '아이들을 놓친 어른들'의 초상을 그린다. 에디는 아이를 지키고 싶지만, 동시에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에 눌려 허우적댄다. 시청자는 그의 불안과 혼란에 공감하면서도, 때론 그에게 화도 난다. 이 복합적인 감정이 이 드라마를 더 깊이 있게 만든다.
2. 롱테이크의 압도적 몰입감
소년의 시간은 전편이 끊김 없는 롱테이크로 구성되어 있어, 관객은 마치 사건 현장에 있는 것처럼 숨을 죽이게 된다. 특히 경찰서에서의 심문 장면, 학교에서 벌어지는 갈등, 그리고 에디가 감정적으로 붕괴되는 순간들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이 방식은 시청자에게 ‘판단’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어떤 장면도 자르지 않고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캐릭터의 감정과 상황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이건 굉장히 리얼하고도 불편한 몰입감이다. 마치 관찰자가 아닌, 공범이 되는 기분. 그게 이 드라마가 던지는 불편한 질문의 무게를 더 크게 만든다.
3. 청소년 범죄를 말하는 방식 – 악마는 누구인가
드라마는 청소년 범죄라는 주제를 다루지만, 아이를 악마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드라마는 묻는다. "왜 그 아이는 그 선택을 했는가?" 아이의 잘못은 분명하지만, 그 잘못이 만들어진 과정은 너무도 복잡하다. 가정 환경, 학교, 사회 시스템, 친구 관계, 디지털 문화까지 모든 것이 얽혀 있다.
소년의 시간이 뛰어난 건 바로 그 지점을 하나하나 파고들면서도, 과도하게 감정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극적인 사건보다 쌓이고 무너지는 감정의 흐름이 더 중요하다. 이 작품은 범죄를 단죄하지 않고, 그 속에 숨은 침묵과 외면의 이면을 조명한다.
4. 결론
소년의 시간은 단순한 범죄 드라마가 아니다. 어른들이 흔히 놓치고 마는 것, 바로 아이들의 침묵과 신호에 대한 이야기다. 에디와 제이미의 이야기는 우리가 얼마나 무심하게 자녀를 대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아이가 ‘문제’가 되기 전,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를 묻는다.
이 작품은 시청자에게 극적인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그러나 날카롭게 감정을 파고든다. 그래서 더 아프다. 감정이 쌓이고 무너지는 그 모든 과정이 낯설지 않고 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결국 소년의 시간은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아이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는가?"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감정적으로 무너지고 싶을 때, 또는 누군가에게 ‘괜찮다’는 말이 필요할 때 이 드라마는 묵직한 울림을 준다. 부모라면, 또는 어른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작품이다. <소년의 시간>은 그저 한 소년의 이야기지만, 동시에 우리가 모두 지나온, 그리고 지금도 겪고 있는 사랑과 책임의 무게에 대한 이야기다.